작문-딜레마

days 2008/07/20 01:58
겨울이면 엄마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젖은 수건을 방바닥에 널어두었다. 방이 건조한 탓에 아침이면 수건은 빳빳하게 말랐다. 이러고 있다보면 나도 그때 그 수건처럼 빳빳하게 말라버릴 수 있을까. 젖은 수건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있기를 대충 세시간째? 시작부터 보기 시작한 야구중계가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그쯤 됐겠다. 이젠 내가 장판인지 장판이 나인지 헷갈린다. 살아 움직이는건 그저 리모컨을 쥔 손가락 뿐. 9회까지 야구중계를 보면서 드라마 재방송 하나와 다큐멘터리 하나, 여자 속옷을 파는 홈쇼핑 채널을 같이 보았다. 야구는 오늘도 지고...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니 아... 배가고프다

밥을 지어먹자니 설거지가 밀려있다.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대도 반찬이 있을리가 없다. 엄마가 보내는 반찬은 왜 늘 냉장고 안에 넣어두어도 금새 상하는지. 라면이나 끓여먹자 했더니 찬장에 라면도 떨어졌다. 편의점 까지는 오분거리, 내 아파트는 오층. 난닝구 차림에 쓰레빠를 끌고 나가 돌아다닌대도 헤어지자고 할 여자친구따위 하나 없지만, 이 날씨에 엘리베이터 없는 오층 건물을 왕복하느니 차라리 안먹고 말지. 먹다 만 우유 유통기한이 다 됐으려나, 냉장고를 열어보니 간발의 차이로 아웃. 이틀 지났다. 결국 내일 출근해서 구내식당 점심을 먹을 때 까지 기근에 시달려야 하는가. 하면서 냉장고 문을 닫는 찰나, 눈에 들어오는 선명한 대비. 붉은 바탕에 노란 글자. 화려한 장식. 다양한 메뉴!! 사 해 루

왜 시켜먹을 생각을 못했을까. 간만에 자장면이나 한그릇, 아니지. 어제 먹은 술 속풀이도 못했는데 짬뽕을 먹어야겠는데, 빈속에 괜찮을까 안그래도 속쓰린데, 그냥 자장면이나 시켜야지. 하지만 자꾸 짬뽕으로 눈이 간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붉은 국물 에 아직 패 풀어해쳐지지 않은 면발의 봉우리 위에 가볍게 안착한 저 고운 자태의 새우가! 나를 사로잡는다. 오 새우여
  "여기 짬뽕 한그릇 갖다주세요"
  "한그릇은 배달 안되는데요"
  "아 그럼 어떡해요, 그런게 어딨어요, 장사 가려가며 하시나"
  "우리도 남는게 있어야죠, 죄송합니다"
  "아.. 진짜.. 그럼, 탕수육 작은거 하나 얼마에요, 같이 갖다주세요"
  "네, 금방갑니다"
생각도 않던 탕수육이지만, 뭐 나쁘지 않지. 저녁까지 때워버려야겠다. 금방온다니까.. 지갑을 어디다 뒀더라.. 어제 입은옷이.. 여기있군. 어라, 어라. 하나, 둘, 셋.. 한나, 두울, 세엣.. 삼천원.. 현금이 삼천원밖에 없다. 이런 젠장, 카드만 쓰다보니 원. 이게 뭐야.. 결국 오층 계단을 걸어 내려가 오분을 걸어 편의점까지 왔다.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는 현금지급기. 안내양의 음성 참 친절하시다
  "서비스 점검중입니다"
2008/07/20 01:58 2008/07/20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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