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개론 계절학기 듣는데
선생님이 책 골라주고 독후감 써오래서
조낸 딴소리만 했다
학점 주실래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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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우리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올려 본다. 위기, 침체, 불안. 더 많은 표현이 있겠지만 대부분이 부정적인 의미로 일맥상통하는 단어들이다. 그 중, 내 생각의 중심에 소외라는 단어 하나. 그리고 뒤따르는 단어, 꿈. 나는 꿈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내가 아는 얼굴들을 찬찬히 떠올려 본다. 가족, 친척, 친구들. 그리고 조심스레 들여다 본 길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보통 사람들의 얼굴들.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지 않겠지만, 내게는 그들 모두가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책에서 만난 노동자, 외국인. 노인, 청소년들만이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소외당하고 있다. 사회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난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사촌동생과의 일이다. 군인이던 나는, 수험생이 되는 동생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격려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런데 딴에는 격려 차원이었다는 편지가 녀석에게는 큰 충격이었나 보다. 내 편지를 받고 종일 울었다는 답장이 온 것이다. 나는 그 답장을 읽고 큰 슬픔을 느꼈다. ‘내 꿈이 뭔지 모르겠어’ 라는 문장 한 줄이 편지지에서 떠올랐다. 스스로의 꿈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비극. 비단 사촌 동생만의 일이 아니다. 이제 곧 수험생이 되는 내 동생, 함께 자란 중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 그리고 나의 어머니에게도. 그리고 내가 마주친 낯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꿈의 상실이라는 비극이 마치 매달 말 배달되어 오는 카드값 청구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시대적 비극이다.
많은 대학생들과 취업 준비생들이 교사나 공무원, 공사나 대기업 직원 따위가 되기 위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서관을 채우고 있는 학생들의 책상위엔 대부분 점수를 위한 책들이다. 영어 점수, 자격증 시험 점수. 더 높은 점수를 따내고, 합격 해 내기 위한 공부가 치열하다. 자취방에 처박혀 기타나 치고 있는 나보다 수십 수백배 숭고한 청춘들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도서관에서 청춘을 반납하고 얻어낸 점수는, 그들을 도서관으로부터 구원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그들 중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공무원으로서의 봉사정신, 교직원으로서의 교육정신,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자각을 가지고 점수를 위해 매진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들 중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하고자 대기업 문턱에 들어서려 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 중, 꿈을 위해 바쳐지고 있는 청춘은 몇이나 될까.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는 꿈 빼고.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는 꿈을 제외한다니. 이건 너무 잔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내 친구들, 동기들, 선배들, 길에서 마주친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나의 어머니로부터 꿈을 강탈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니. 유치원 다닐 때는 대통령 되겠다던 사람들의 꿈이 왜 이토록 소박해져 버렸나. 대체 왜.
꿈을 찾아가는 일에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불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주입 당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불안함을 떨치기 위한 방법만을 배웠기 때문이다.
군에서 만난 동갑내기 후임은, 지금도 한창 공부중이다. 이름만 대도 알아주는 학교에 다니던 그는, 군 생활에 여유가 생기던 무렵부터 수능시험을 다시 치르겠노라며 수험생활에 돌입했다. 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니던 학교와 학과는? 별 생각 없다가 점수에 맞추어 지원했기 때문에 돈과 시간은 아깝지만 미련은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목표는? 의대. 이유는? 돈 많이 버니까. 네 꿈은?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사는 것. 나는 그의 기분에 맞추어 주기 위해. 로또나 맞으면 좋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돈이 그렇게 중요한 걸까. 하고 운을 띄웠다. 그는 대답했다. “돈 한 푼 없다고 생각 해 보십쇼. 아무것도 못하잖습니까.”
나의 어머니부터,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돈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낀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돈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사회다. 때문에 생계에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나는 책을 통해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돈이 없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돈이 없으면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오로지 소비를 통해서 불안을 해소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는 꿈이 흔들리는 순간 불안해져 버리는 사람들이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틀은 자본과 노동이다. 나는 여기에 내 멋대로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겠다. 바로 소비.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피자본가 계급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노동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동시에 역시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한 소비를 강요당했다. 이 강요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그리고 교육이라는 명목 아래에 이루어져 왔다.
나는 오늘날까지도 한국사회의 저변으로부터 성장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한국사회 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의 사회는 성장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성장은 이익의 추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의 추구란 곧 자본가의 이익 추구이며, 정치적으로는 자본과 결탁한 권력집단의 권력 신장에 있다. 자본가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비재를 만들어내고 광고를 쏟아낸다. 정치권력집단은 자본과 결탁하여 권력의 유지를 위한 정치를 할 뿐이다.
자본가와 권력집단의 목적은 그들로부터의 착취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소비를 통해 불안을 해소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만드는 것이며. 성장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진 비인간적 착취의 테두리 밖에서, 분배로의 무관심에 깊어가는 소외의 테두리 밖에서,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는 꿈을 좆는 청춘들을 도서관에 수험서와 함께 가둬버리는 것이다.
경제적 부와 안정이라는 꿈은 그러므로 꿈이 아니다. 자본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우리에게 주입한 불안해소를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 학교에서는 점수와 등수로, 대학에서는 서열로, 나아가 사는 동네로, 집 크기로, 차종으로, 입는 옷의 브랜드 따위로 치밀하게, 꾸준하게 주입한 진통제다.
사람들은 더 큰 집을 사고, 더 큰 차를 타고, 더 비싼 브랜드의 옷을 입으면서도.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대학 도서관 한켠에서 토익과 자격증과 고시를 위한 공부에 몰두하면서도,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나는 믿고 싶다. 나를 포함한 우리의 청춘들이, 돈이 없어서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라기 보다는, 자본가와 권력집단으로부터 주입당한 꿈 아닌 꿈 뒤로, 정말 이루고자 하는 꿈과 아직 찾지 못한 꿈을 이루어가고 있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고.
스스로의 꿈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에서야 비로소 소외받는 사람들이 사회의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꿈을 좆는 이가 스스로 그러함을 불안해 할 필요 없는 사회가 실현되길 바란다. 이 사회에서, 꿈의 상실과 박탈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그것이 내 꿈이다.
오늘날의 우리사회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떠올려



이게 무슨 책에 대한 건데?
박노자씨꺼 읽고 쓴거라 쳐 ㅋㅋㅋㅋ
글고자본주의 사회의 기본틀에 소비가 빠진다고 누가그래?
왜 니멋대로 추가해 ㅋㅋㅋㅋㅋ
소외도 자본주의의 핵심개념인데 ㅋㅋㅋㅋ
설마 소비가 아니라 판매가 자본주의의 거시기라고 생각한게냐?? 음...
누군가가 조낸 돈 대고 누군가가 쎄빠지게 뭔가 만들기만 한다고
사회가 굴러가는건 아니자네...ㅋㅋ
그러나 나 역시 얼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에...마지막 부분에는 공감...ㅋ
모를리가 없자네!
다만 개론수업이라 꿍짝맺추기...
우리의 사회학도들ㅋ
맞아요, 설사 자기 집이 에쿠스와 타워펠리스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말할 거예요.
분배 같은 건, 삶의 낭만 같은 건, 꿈 같은 건 다 영면에 들고 난 이후에야 찾아야 할 것들이라고.
고마워요. 충훈씨의 정리된 줄글은 이번이 처음이군요. 헤에.
얼~ 박반장 멋져
세미나 하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