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17일. 나는 전역했다. 2년 4개월이라는 긴 복무를 마치고 내가 있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2년 4개월 동안 기다려온 날. 수많은 계획과 포부와 희망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고싶은 일들과 꿈.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간에 할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1년
2007년 6월 17일
나는 무엇을 했는가...
5월
'좀 나가봐야겠습니다' 라고 하면 쉽게 얻어 나올 수 있던 외박처럼, 많은 일이 내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거라 여기던 초여름. 양동께서는 대학생이었고 택시에는 벽의 페인트가 채 마르지 않았었다. 뭐가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KOBA를 보겠다고 전역이 한달여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년 휴가를 끌어썼다
6월
전역을 일주일 앞두고 마구만 공연에 섰다. 두시간을 합주하고는 세곡을 연주했다. 그냥 후렸다. 전역한 선임, 바로 밑 후임, 직장 동료가 그 공연을 보러 와 주었다. 멋진 사람들이었다. 덩달아 나도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역과 함께 자취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간섭과 통제가 없는 생활을 스스로 통제하고 제대로 된 살림살이를 하고자 이런 저런 장보기에 힘쓰던 때였다
7월
해외로 공부하러 갔던 여자친구가 돌아왔다. 전역과 함께 돌아온 그녀. 모든것이 나를 위한 준비된 시나리오 인것만 같았다. 라고나 할까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갓 전역한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폭우속의 음악축제는 나를 천국 한가운데로 인도했다. 내리는 비속에 음악과 함께 호흡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세상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내가 만난지 500일 되는 날을 나는 이 뻘밭에서 보냈다
8월
신촌 신나라 레코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악을 찾아주고 권해주는 일은 꽤나 재미있었다. 번 돈으로는 CD와 TV를 샀다. 음악을 팔아서 음악을 샀다. 만족스러운 아르바이트였다. 하지만 쌤과의 오해 아닌 오해가 일었다
9월
학기가 시작되었다. 복학.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삼국지만 줄기차게 했을 뿐이다. 촉황 유비가 천하를 통일했다. 제국은 300년을 갔다고 했다. 이때부터 나는 서서히 두려워 하기 시작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고작 게임 따위 속에만 있을 뿐이었다
다만 이녀석들만이 위로가 될 뿐이었다. 이녀석들이 전역하면 뭔가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했더랬다
10월
내가 태어난 달이다. 학교에서는 중간고사가 한창. 나는 내 기타를 파버리고자 했다. 브릿지를 뜯어내고 이 무식한놈을 박아넣을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내가 텔레캐스터를 선택하게 되었던 이유를 곱씹을수록 나는 화를 내고 있었다. 이무렵이 지나 쌤과 화해 아닌 화해를 했다
11월
귤이나 까먹으며 방안에 처박혀 있었다
12월
11월과 12월의 여자친구는 유난히 나긋나긋했다. 그때 아마도 내가 유난히 나긋나긋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거다. 왜인지 잘 알면서 왜인지 모른척 했던 불안감들을 받아주면서도 그녀는 잘 웃었다. 열 다섯 곡쯤을 준비해서 열 세곡을 연주했던 마구만 공연은 최악이었다. 드럼 MR은 쓰레기였고 나는 노래는 노래방에나 가서 부르라는 농담을 들어야만 했다. 웃기지 마라. 노래는 공연에서 부르는거다. 아무리 못불러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웃었다 그냥. 기말고사를 봤고, 말도 안되는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1월
감기를 앓았고, 잠깐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아이팟을 샀다.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하며 여전히 천하 통일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2월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올해들어 두번째 감기. 나는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었다. 일거리가 있다며 나를 불러낸 친구는 나를 피라미드 교육장으로 데리고 갔다. 갖은 설득으로 그놈을 끌어냈다. 그놈보다는 나를 좀 어떻게 해야 할 처지였을텐데. 얼간이들도 전역했다. 변하는건 별로 없었다
3월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글래스톤배리에 가기 위해 휴학하겠다던 결심따위는 온데간데 없이. 사진수업을 수강했고, 엄마를 졸라 카메라를 샀다. 스물 넷이 되어서
방에는 물건들이 잔뜩 늘어났다. 돼지같은 나는 이런 돼지우리에서 천하통일이나 이루며 살았다. 방에만 쳐박혀 있으니 방에서 가지고 놀것들이 필요했던 거겠지. 어느덧 여자친구와 함께 한 지도 2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4월
시험공부와 과제
5월
스파이더맨을 봤다. 마구만 공연을 준비했다. 나는 아이들이 하고싶어 하는 곡은 한곡도 연주해주지 못했다. 동시에 내가 하고싶어하던 곡도 연주하지 못했다
마구만 공연에서 다시 나는 노래를 했다. 누군가 다시 노래는 노래방에서 하라고 했다. 그래 그래야지. 무료 공연에서 난생 처음 발레를 직접 보았다. 기말고사와 과제에 며칠간 치여 살았다. 지금은 그저 펜타포트 라인업만 연거푸 확인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무엇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바랬던 무엇도 하지 않았다. 못 한것도 아니며, 누군가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었다
저도 4-5월달에 잠깐 삼국지11에 빠져들뻔하다가
겨우겨우 헤어나왔는데...천하통일 하려면 얼마나 빡시게 해야하나요..-_ -;;
아으 저도 카메라가 너무 사고파요!
천하통일 마음먹으면 하루...
내 1년은? -_-
gg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안나와있으므로 무효 :P
무효지.. 암..